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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이자시(戒二子詩) 최충 선생은 두 아들에게 계이자시를 남기었다. 선비가 세력으로 출세하면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일이 드물고 文德으로 영달해야 경사인 것이라고 훈계하니 최충 선생의 후학들에게도 정신적 규범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吾今戒二子 付與吾家珍 이제 두 아들에게 훈계하노니, 우리 집안의 보배로 삼아라. 淸儉銘諸己 文章繡一身 청렴과 검소함을 각자 몸에 새기고, 문장으로 온 몸을 장식하여라. 傳家爲國寶 繼世作王臣 집안에 전하여 나라에 보배가 되고, 대를 이어 어진 신하가 되어라. 莫學紛華子 花開一向春 사치와 허영은 배우지 말라, 꽃은 봄을 향해 한동안 피느니라. 家世無長物 惟傳至寶藏 집안에 전하는 귀한 물건은 없으니, 오직 지극한 보배로 간직하여 전하라. 文章爲錦繡 德行是珪璋 문장으로 부귀(錦繡)를 누리고, 덕행으로 공명(珪璋)을 이루어라. 今日相分付 他年莫敢忘 오늘날 너희에게 분부하노니, 두고두고 감히 잊지 말거라. 好支廊廟用 世世益興昌 나라에 동량으로 공헌하며, 자손만대에 더욱 흥하고 창성하여라.
▣ 칠언절구 - 崔冲 선생 시
滿庭月色無烟燭 만정월색무연촉 뜰에 가득한 달빛은 연기 없는 촛불이요 入座山光不速賓 입좌산광불속빈 자리에 드는 산 빛은 초대(招待)하지 않은 손님이네 更有松絃彈譜外 갱유송현탄보외 다시 소나무 현이 있어 악보 밖의 곡을 연주하느니 只堪珍重未傳人 지감진중미전인 다만 보배로이 여길 뿐 사람에겐 전할 순 없네
-------------------------------------------------------------------------------------------------------------------- ▣御苑種仙桃詩 어원종선도시 - 임금 정원에 선도(仙桃)를 심다.
고려 현종21년 庚午 4月 甲午에 왕이 문덕전(文德殿)에 납시어 복시(覆試)를 주관하였는데 이때 최유선 선생이 지은시로 詩와 賦가 모두 王의 마음에 만족하여 곧 어필(御筆)로 일등합격을 매기고, 을과독보제일명(乙科獨步第一名)으로 뽑아 七品관급을 주어 한림원(翰林院)에 들게 했다. (보한집)
御苑桃新種 移從閬苑仙 어원(御苑)에 복숭아를 새로 심으니 어원도신종 이종랑원선 낭원(閬苑)의 선도(仙桃)를 옮겨 왔네. 結根丹地上 分影紫庭前 뿌리는 단지(丹地)에 서렸고 결근단지상 분영자정전 그림자는 자정(紫庭, 궁정) 앞에 나뉘었네. 細葉看如花 繁英望欲燃 가는 잎은 그림처럼 보이고 세엽간여화 번영망욕연 번성한 꽃은 타는 듯하네. 品高鷄省樹 香接獸爐烟 품위는 계성(鷄省)의 나무보다 높고 품고계성수 향접수로연 향기는 수로(獸爐)의 연기에 접했네. 天近先春茂 晨淸帶露鮮 하늘이 가까워 봄은 먼저 무성하고 천근선춘무 신청대로선 새벽이 맑아 이슬 띠도 곱네. 是應王母獻 聖壽益千年 이는 서왕모(西王母)가 바친 것이니 시응왕모헌 성수익천년 임금의 수(壽)는 천년을 더하소서.
문헌공 최충 선생 長子 문화공 최유선(崔惟善) 지음.
▣문화공 유선(文和公 惟善) 선생의 규방(閨房, 아낙)에 그리는 시
黃鳥曉啼愁裏雨 황조효제수이우 꾀고리는 새벽에 울고 시름 속에 비 내리는데 錄楊晴弄望中春 록양청농망중춘 푸른 버들 맑은 날에 중춘(中春)을 바라보네
▣문화공 유선(文和公 惟善) 선생의 천지에 어찌 경계가 있는가
天地何疆界 山河自異同 천지하강계 산하자이동 천지에 어찌 경계가 있는가 산하가 스스로 같지 않네. 君母謂宋遠回首一帆風 군모위송원회수일범풍 그대는 송나라 멀다고 말하지 마소 고개 돌리면 한 돛대 바람이 이네
-------------------------------------------------------------------------------------------------------------------- ▣乙壯元이 甲壯元을 부축하네
문종22년에 문헌공(文憲公) 최충(崔冲) 선생은 장원급제 후 오랜 관직생활을 거쳐 문하시중, 내사령(이후에 내사성을 중서성으로 개칭)으로 치사하였고, 長子 최유선(崔惟善) 선생은 장원급제 후 중서령(中書令)으로 있었고, 次子 최유길(崔惟吉)공은 수사공(守司空) 섭상서령(攝尙書令)으로 있을때 왕이 나라의 원로(元老)에게 연회를 베푸는 국로연(國老宴)에서 두 정승 아드님들이 문헌공을 부축하고 들어서는 광경이 영광스러워 한림학사 김행경(金行瓊)이 이 장면을 그리는 시를 지었는데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고려사열전, 보한집)
紫綬金章子及孫 자수금장자급손 자수와 금장은 아들과 손자에 미치고 共陪鳩杖醉皇恩 공배구장취황은 함께 구장을 모시면서 황은에 취했네. 尙書令侍中書令 상서령시중서령 상서령이 중서령을 모시고 乙壯元扶甲壯元 을장원부갑장원 을장원이 갑장원을 부축하시네. 曠代唯聞四人到 광대유문사인도 오랜 대를 걸쳐서는 오직 네 사람에 이르렀다고 들었는데 一門今有兩公存 일문금유양공존 지금은 한 가문에 兩公이 있네. 家傳冢宰猶爲罕 가전총재유위한 집안에서 재상이 이어나기도 드문 일이거늘 世襲魁科最可尊 세습괴과최가존 대를 물려 이어나는 장원은 더 없이 훌륭하다. 幾日縉紳相藉藉 기일진신상자자 진신들의 칭찬이 언제까지 자자하려나 今朝街路更喧喧 금조가로갱훤훤 오늘 아침 길거리가 다시금 떠들썩해지네. 聯翩功業流靑史 연편공업류청사 잇따른 공업(功業)이 청사(靑史)에 흐르니 雖禿千毫不足言 수독천호부족언 千자루의 붓이 닳은들(禿) 어찌 다 말하겠는가.
한림학사 김행경(翰林學士 金行瓊) 지음.
-------------------------------------------------------------------------------------------------------------------- ▣문청공 최자(文淸公 崔滋) 선생의 시
1. 雞林永嘉 계림의 오랜 역사는 桑柘莫莫 뽕나무와 산뽕나무가 우거졌기 때문이네 春而浴蠶 봄날 누에 칠 때 一戶萬箔 한 집에 만 개의 잠박이요 夏而繅絲 여름이라 실 뽑으면 一指百絡 한 손에 백 타래씩 始而縒 처음 실을 뽑을 적에 方織以纅 베를 짜아 색을 내고 雷梭風杼 우레 같은 베틀소리에 바람이 난다. 脫手霹靂 우레와 벼락이 사람의 손에서 난다.
羅綃綾繰 비단이 벌려있고 또 고치를 치니 縑綃縳穀 비단 실이 희어 곡식이 되네 煙纖霧薄 가는 연기와 엷은 안개가 雪皓霜白 눈 같이 희고 서리 같이 희다. 靑黃之朱綠之 파랑ㆍ노랑ㆍ주홍ㆍ녹색으로 물들여 爲錦綺爲繡缬 아름다운 비단에 수를 놓고 색을 들여 公卿以衣 공경들이 입고 士女以服 선비와 여인네들이 입어 樞曳綷䌨 끌리는 소리, 옷 스치니 와삭거리니 披拂赩赫 붉고 붉은 빛이 떨쳐 일어나네 是誠天府 이야말로 하늘이 정성을 쏟은 곳으로 國寶錯落 나라의 보물이 가득 쌓였네
叟曰 담수가 말하되
公卿列第 공경들이 차례로 벌여나가 聯亘十里 잇달아 10리에 걸쳤는데 豐樓傑閣 가득한 문설주와 빼어난 누각이 가득했고 鳳舞螭起 봉황이 춤추고 용이 일어나듯 涼軒燠室 서늘한 마루 더운 방이 鱗錯櫛比 즐비하게 갖춰 있네
- 보한집 - 삼도부중 동경(경주)-에서 2
2. 輝映金碧 푸른 금이 휘황찬란하고 / 森列朱翠 우거진 숲에 붉은 비취(단청) / 緹繡被木 붉은 비단으로 수놓고 이불 같은 나무로 / 彩毯鋪地 고운 빛깔의 담요로 땅을 깔았네 / 珍木異卉 온갖 진기한 나무 풀들 / 名花佳蘤 이름난 꽃과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네 / 春榮夏實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열매를 얻어 / 綠稠紅䔺 푸른빛이 빽빽하고 붉은 꼭지 / 敷香布蔭 그윽한 향내, 서늘한 빛 그늘이 / 爭妍竟媚 한껏 곱고 아름답기 다함이 없네 / 後房佳麗 뒷방의 미인들은 / 雲衣霞帔 구름옷에 치마를 펴고 / 盡態極艶 갖은 자태와 요염으로 / 列陪環侍 열 지어 둘러섰네 / 玳筵綺席 댓 자리 비단 깔개에 / 九醞波漫 아홉 가지 술로 물결을 이루는데 / 笙歌鼓吹 생황(관악기의 일종)과 노랫소리 북소리가 바람에 날리네. / 雖雍洛靡麗之盛 비록 누그러지고 낙하에 쓸려 그 화려하고 성함이/ 莫我敢齒 감히 우리(개경)에게 대들지는 못하더라. / 大夫曰噫 대부가 탄식하여 말하되 / 舊都之流離蓋以此 옛 서울(곧 경주)의 몰락이 대개 그 때문 아닌가. / 順天事大 하늘에 순응하여 큰 뜻으로 / 風俗淳煕 풍속이 순후하고 밝네 / 於萬斯年 어즈버 만 년에 / 安不忘危 태평한 가운데 위태로움을 잊지 말라... /
-동문선(東文選) 제2권 부(賦) -문청공 최자(崔滋)
3. 乘五龍車 오룡거로 다니며 上天上天 하늘로 오르락내리락 導以百神 온갖 신이 인도하고 從以列仙 뭇 신선이 뒤 쫓았네 熊然遇女 곰소(熊淵)에서 여인 만나 來往翩翩 펄펄 날 듯이 오고 갔소.
4. 江心有石 강 가운데 돌 있으니 曰朝天臺 조천대(처음 하늘을 모신 곳)로다. 怳兮盤陁 얼핏 보면 비탈진 곳인데 忽焉崍嵦 홀연 솟아 산이 되었네.
5. 高明窮崇 밝고도 드높음이 다함이 없어 翕闢宇宙 우주를 여닫는 듯 冥迷西東 서쪽과 동쪽이 아득하니 天不能奪其 하늘도 능히 그곳을 빼앗지 못하리라. 鬼不得爭其功 귀신도 다투어 그 공력을 얻지 못했음이라
6. 細雨披蓑俯見於漁翁 굽어보면 가랑비에도 도롱이 입은 늙은 어부들
夕陽吹笛 석양에 피리 부니 遠聞於牧童 멀리 들리는 목동소리들 盡圖難髣 그림으로도 그릴 수 없고 賦詠未窮 노래로도 다할 수 없네 爾乃解錦纜浮蘭舟 어사와, 비단 닻줄을 풀고 둥실 난초 배를 띄어
7. 六合交會 여럿이 모여 서로 모임이 되네
山宜海錯 마땅히 산은 해(해)와 섞이어 靡物不載 싣지 않은 물건 없네 擣玉舂珠 옥을 찧고 구슬을 찧어 累萬石以磈 만 개의 돌을 묶어 돌무더기 되어 苞珍裹毛 그령 같은 보배 가죽으로 감싸아 聚八區而菴藹 여덟 지경으로 나누어 풀 열매처럼 가득하다.
-------------------------------------------------------------------------------------------------------------------- ▣고죽 최경창(孤竹 崔慶昌) 삼당시인의 한사람인 고죽 최경창과 기생 홍랑의 사랑으로 유명. 홍랑의 '못버들 갈해 것거' 를 한역한 '번방곡(飜方曲)' 이 있다.
飜方曲 번방곡 고죽 최경창
折楊柳寄與千里人 절양류기여천리인 버들을 꺽어 천리 먼 사람에게 부치나니 爲我試向庭前種 위아시향정전종 나를 위해 시험삼아 뜰 앞에 심어보오 須知一夜新生葉 수지일야신생엽 모름지기 아소서 하루 밤 새로 난 잎이 憔悴愁眉是接身 초췌수미시접신 초췌하고 수심어린 눈썹을 한 첩의 몸인것을
묏버들 갈해 것거 홍랑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자시는 창(窓)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古體> 묏버들 ᄀᆞᆯᄒᆡ것거 보내노라 님의손ᄃᆡ 자시ᄂᆞᆫ 창밧긔 심거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님 곳나거ᄃᆞᆫ 나린가도 너기쇼서.
▣孤竹 崔慶昌(고죽 최경창) 武夷洞 5수(무이동 5수)
1. 水淸日光澈 수청일광철 물 맑고 햇빛 맑아 地幽苔色古 지유태색고 땅은 그윽하고 이끼 색은 예스러워 亂峯生夕嵐 란봉생석람 수많은 봉우리에 저녁 산기운 생겨나고 歸去莫回顧 귀거막회고 돌아가거들랑 뒤돌아보지 말라
2. 滿眼對煙景 만안대연경 눈에 가득 아지랑이 하늘거리는 경치 良辰空自愁 량진공자수 이 좋은 시절 공연히 스스로 우울하다. 故園今日意 고원금일의 고향동산엔 오늘의 생각 碧草映春洲 벽초영춘주 푸른 풀빛 봄 섬에 비추리라
3. 甘雨潤初足 감우윤초족 단비가 땅을 적셔 애초에 좋았는데 園田綠已稠 원전록이조 전원에 푸른 풀들 이미 빽빽하구나. 今朝好天氣 금조호천기 오늘 아침 좋은 날씨 杖屨出林丘 장구출림구 지팡이 짚고 나막신 신고 숲 언덕을 나온다
4. 落日臨淸池 락일림청지 지는 해 맑은 못에 들어 披襟照我面 피금조아면 옷깃 헤치고 내 얼굴 비추네. 古跡尙依依 고적상의의 옛 자취는 아련한데 古人不可見 고인불가견 엣 사람은 볼 수 없네
5. 佳會此時最 가회차시최 좋은 모임 이 시간이 가장 좋아라 浩歌千古情 호가천고정 호탕하게 천고의 품은 마음 노래하노라. 歌竟忽辭去 가경홀사거 노래 끝나면 홀연히 떠나고 萬壑餘松聲 만학여송성 온 골짜기엔 소나무 소리만 들린다
▣孤竹 崔慶昌(고죽 최경창) 高峰山齋 고봉산재 古郡無城郭 고군무성곽 옛 고을이라 성곽도 없고 山齋有樹林 산재유수림 산 서재에는 수풀만 우거졌네 蕭條人吏散 소조인리산 쓸쓸히 사람과 관리 흩어진 뒤에 隔水搗寒砧 격수도한침 물 건너 차가운 다듬이 소리만 들려오네
-------------------------------------------------------------------------------------------------------------------- ▣간재공 최규서(艮齋公 崔奎瑞) 선생의 일사부정(一絲扶鼎)의 고사(故事)
1. 岬寺晩種(갑사만종)
禪家遙住濢㵟顚 선가는 저 멀리 푸른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隱隱鐘聲日暮天 해 저무는 하늘엔 은은히 들리는 종소리로다. 更有長風吹引去 다시 센바람이 불어 휩쓸어 가고 暝和疎雨出林煙 어둠에 내리는 성긴 비 숲 속 연기를 쫓네
2. 龍津暮潮(용진모조)
寞寞晴沙點點島 넓고 너른 모래사장 점점이 섬들인데 長天闊海杳然開 긴 하늘 넓은 바다 묘연하게 트였구나. 借問孤舟何處泊 묻건대 외로운 배 어느 곳에 머물렀는고 竹林風起暮潮回 대숲엔 바람 일고 저녁 조수 돌아오네.
3. 平湖秋月(평호추월)
開窓正對玉芙蓉 창문 열고 아름다운 연꽃 대하니 嵐氣移來碧幾重 흐릿한 이내 옮겨와서 푸르기는 몇 겹인고. 望久不知山遠近 오래도록 바라보니 산의 원근을 알 수 없어 慾尋仙逕杳無暰 신선의 길 찾고자 하나 묘연하여 자취도 없네.
-------------------------------------------------------------------------------------------------------------------- <제1회 해동공자 최충 문학상 일반부 최우수상>
달빛마당 박수봉(수원시 권선구 금곡로)
돌계단 밟아 문헌서원 가는 길 청잣빛 하늘이 고려 같았다
나무들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숲속에 내가 아는 고려가 있다 하늘에 화문으로 박혀 있는 낮달이 희미한 몇 세기를 이곳에다 풀어놓고 짐짓 모른 체 돌아갔다 계절이 시끄럽게 울고 있는 것은 나무들을 고려한 감정일 것이다
서원 뜰 가득히 달빛 걸어놓고 계절풍의 바람이 소나무 현을 튕긴다 수십 세기를 건너온 악보 없는 연주가 층계 밑 배롱나 무의 눈시울을 적신다 촛불을 켜놓고 달빛마당 서성였을 월포(月圃)*의 외로움도 저렇게 붉었겠다
촛불이 질 때까지 세우지 못한 시의 등뼈가 화석으로 뒹구는 뜰, 여물지 못한 세상, 벌어진 옷섶을 꼭꼭 여며주던 시인의 문장들은 한줌 재로 사라졌다 전염병처럼 불어 닥친 회오리 바람, 분서(焚書)의 매운 연기가 세상을 덮고 사람들은 연신 눈시울을 훔쳤다 연기로 뒤덮인 불가역적 길 위에서 시인은 줄곧 말을 잃었다
저녁 숲이 꺼내어 놓은 별곡체의 음률이 배롱나무 옷자락을 흔든다 丹心, 꽃잎은 지면서도 얼마나 입술을 깨물었는지 바닥까지 벌겋게 핏물이 배었다
바람의 유골이 흩어져 있는 서원의 달빛마당 월포의 도포자락 품 넓은 그림자가 소매를 털고 가만히 방문을 연다 달 한 조각 쥐고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새벽 어깨 사이로 고려의 뒷모습이 어른거린다.
-------------------------------------------------------------------------------------------------------------------- <제3회 해동공자 최충 문학상 초등부 최우수상>
최충 할아버지 최문결 (해주최씨 38세/서울 신미림초)
최충 할아버지 동상을 보았다 책을 들고 서 계셨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할아버지가 든 책은 책장이 날아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바람보다 힘이 세다 할아버지가 훌륭한 학자니까 힘이 센 것이다
-------------------------------------------------------------------------------------------------------------------- 석곡란石斛蘭 최운선
난향의 분무기로 한 살이 산다해도 석곡란 여린꽃잎 시간을 견뎌낼까 눈을 꼭 감고 감아도 쓰러질까 애닲다
글을 쓰는 마음으로 최운선
밤엔 별도 떠있다 달도 떠있다 어느새 별과 달은 나와 함께 정다운 동무가 되어 밤새도록 재미나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면 나는 글을 쓴다. 어느 덧 나의 마음은 잔잔한 호수와 같이 잔잔해지고 글을 쓸 때 나의 마음은 꼭 천사가 되어간다
-------------------------------------------------------------------------------------------------------------------- <최충 문학상 당선 작품>
1. 각촉부시 정혜교 (인천 신현고3)
초가 타들어 가면 시가 향 되어온다 적막한 붓질 속 땀 되어 흘러내리는 촛농
시를 지어 읊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을 선보이는 것 불이 짧아져도 시안(詩眼) 그림을 푸르게 물들인다.
2. 우리가 지금 박소율(인천 가현초4)
우리가 지금 마시는 물이 최충 선생님의 땀방울
우리가 지금 먹는 젤리는 최충 선생님의 말씀
우리가 지금 먹는 음식은 최충 선생님의 열정과 노력
3. 가둬진 감정 권여정 (경북 구미여고3)
차곡차곡 정리하여 한쪽 구석에 두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나와서 박스에 담았다.
박스의 개수가 늘어나 한쪽 구석에 쌓아두었다. 박스가 자꾸 열려서 방 안에 넣고는 문을 닫았다.
방 하나가 금새 차고 몇 번째일지 모르는 방을 오늘도 채웠다. 방문이 열릴까 두려워 자물쇠로 잠궜다.
수많은 나의 감정들을 구석에 넣고 박스에 넣고 방안에 가두었다.
-------------------------------------------------------------------------------------------------------------------- <청백리 최만리(淸白吏 崔萬理) 시조 문학상 작품>
1. 철조망 한가닥 이하담 (충남 태안중)
길바닥 돌멩이로 나뒹구는 철조망 한가닥 독기 품은 녹슨 가시 하나를 손바닥 위에 올리면 떠오르는 우리나라
삼천리 금수강산 허리를 싹뚝 자른 삼팔선 철조망이 얼마나 우리들 마음에 응어리지면 가슴이 아파올까
우리는 태초부터 서로가 한 몸이라 반쪽이 난 하늘 아래 땅을 걷는 발바닥이 언제나 철조망처럼 이리아픈 것일까
2. 청렴한 선비 이재희 (수원 영덕고)
벼루 위에 먹을 갈아 붓 끝을 적신다 하얀 종이 쓸어내려 글씨를 적으니 청렴함 가르쳐내는 시 한편을 만든다
그의 집 곳간에는 부정한 것 하나 없고 탐욕없는 손으로 재물을 멀리하니 청백리 칭호를 받는 선비의 혼은 맑다
청백결백 신조삼고 유학을 연구하던 조선의 유자들 중 으뜸가는 정신으로 집현전 빛내었던 사람 그 이름은 최만리
3. 엽전 조군제 (부산 기장군)
태초의 꿈을 안고 바다를 낚으며 물레가 쏟아내는 물살의 생채기를 물도랑 사이사이에 염밭은 올곧다
햇볕이 덧칠하여 재색한 말간 얼굴 하이얀 눈ㅂ망울만 윤슬 덮고 눕는데 빛살을 가두리 하여 사래질하는 바람
갈 것은 가거라 알곡만 남아라 희미한 과거는 시선을 풀어내고 젖은 눈 시리어 가는 바다의 눈물
밀대로 밀고 밀어 속죄한 물결 안고 발자국 곧은 시간 피어나는 소금꽃 하얗게 사그락대며 쌓여가는 기도들
4. 몽유도원도 박한규 (경북 포항시)
어혈이 시리도록 기억을 다독이며 두루마리 펼쳐놓고 잇대어 가는 붓끝 한바탕 파묵을 친다, 벼루가 파여 가도
사무친 길목마다 어혈의 시린 가슴 속수무책 세우러동안 어룽져서 물들고 두고 온 도원의 풍경 먹먹하게 밟힌다
야위는 환국의 꿈 뼛속 깊이 스며들어 수묵담채 흩날리는 눈시울도 시린 날 가슴을 스치는 소리 어지러이 울린다
핏빛 너울 바다건너 산역을 뒤로 한 채 타관을 베고 누운, 끌려온 생을 위해 그 눈물 말리고 싶다, 복사꽃 환한 날에
5. 최만리 이헌재 (김포시 한강로)
죽순처럼 기다렸다 하늘보며 올라가고 솔나무처럼 푸르고 꿋꿋하게 사는 삶 조선땅 한복판에서 전설로만 남았다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모두 섞여 사는 오늘 길고 긴 강물처럼 깨끗하고 곧은 생각 올곧게 지켜내면서 만리까지 뻗어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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